[2부작]배트맨을 좋아했던 아이

by 트랜스  /  on Dec 17, 2015 16:09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세상엔 수많은 우주가 존재합니다.


저희가 살고 있는 우주, 선과 악이 뒤바뀐 우주, 시간이 세배 더 빨리 가는 우주, 모든 행성이 치즈로 이루어진 행성 등. 너무 많고 다양해서 셀 수가 없는 정도입니다.


그 빽빽한 우주 틈 사이에, 한 우주가 있었습니다.


우리 우주처럼 그 우주에도 지구가 있었습니다. 그 지구에서 사는 사람들은 아침에 출근을 하고 핫도그를 먹고 클럽에서 춤을 추는 등, 우리랑 와안전히 판박이었죠.


단 하나만 제외하고요. 그 곳에서는 오직 두 가지의 히어로 만화만 존재했답니다.


바로 '슈퍼맨' 과 '배트맨' 이지요.


'슈퍼맨' 은 그 지구 최고의 만화였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슈퍼맨의 팬이 아닌 사람들이 없었죠. 빨갛고 파란 타이즈에, 가슴팍에 커다란 S자를 떡하니 붙여놓고,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위험이 생기면 곧바로 날아가 도와주는 이런 멋진 히어로를 누가 좋아하지 않겠어요?


반면 '배트맨' 은 참담했습니다. 폭력적이고 잔인한 스토리와 악역, 불행한 성장환경과 초특급 부자라는 공감되지 않는 설정, 그리고 무엇보다 그 촌스러운 박쥐 가면은 대체 뭐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트맨을 좋아하기는 커녕 그런 만화가 있는지도 몰랐지요. 또 그런 만화가 있는지 아는 사람 중 대부분은 배트맨을 싫어었했습니다.



로빈 존 블레이크는 레밍턴 중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7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중학교에 처음 입학하던 날, 같은 반 학우들과 서로 자기소개를 끝마친 후에 로빈은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보았지요.


"너 '배트맨' 아냐? 그거 완전 쩔어!"


로빈이 물어본 일흔 아홉명의 친구들 중 예순 네명은 배트맨이 뭐냐고 대답헀고, 일곱 명은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재미없었다고 대답했고, 나머지 여섯 명은 너 그런 이상한 만화를 보냐고 대답한 후에 로빈에게 경멸의 시선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로빈은 계속 배트맨 이야기만 했어요. 공부할 때도 배트맨, 쉬는 시간에도 배트맨, 농구할 때도 배트맨, 밥 먹을 때도 배트맨, 심지어 슈퍼맨 이야기 할 때도 배트맨. 로빈의 교과서 귀퉁이엔 언제나 배트맨이 투페이스나 조커를 물리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로빈이 말하는 다섯 마디의 말 가운데엔 언제나 한 마디는 반드시 배트맨 관련 단어가 있었어요.


1개월 후, 로빈은 왕따가 되었습니다.


로빈이 집에 갈 때 아무도 그와 같이 걸어주지 않았어요. 하지만 로빈은 별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배트맨의 주인공 브루스 웨인도 이렇게 어린 시절 불행한 경험을 겪었다면서. 이러한 불행을 극복해야 진정한 히어로가 되는 거라고 로빈은 생각했어요.


로빈은 집까지 장장 1시간은 되는 거리를 매일 걸었습니다. 부모님이 차로 데려 오시진 않았어요. 로빈의 부모님은 그가 9살 때 괴한의 총에 맞아 돌아가셨거든요. 참고로 그 괴한은 붉은 후드를 걸치고 있었다고 하는데, 아직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집에 온 후 로빈은 항상 먼저 방으로 들어가 벽에 붙여진 수많은 배트맨 그림들을 바라보며 즐거운 시간을 만끽했습니다. 그리고 남는 시간동안 배트맨 만화에서 나오는 무술들을 연습하고, 인터넷에 들어가 배트맨 팬사이트 ---찾기 꽤 힘들었습니다.--- 에서 다량의 글을 남겼지요. 그러다 보면 해가 떨어지기 때문에 로빈은 일찍 잤습니다. 범죄자로부터 배트맨이 자신을 지켜줄 것으로 굳게 믿은 채로요.


격주 토요일마다 로빈은 기차를 타고 뉴욕으로 갑니다. 배트맨 만화책을 사기 위해서지요. 배트맨 만화책은 그 출판량이 적어서 뉴욕이 아니라면 구경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희귀본이었습니다. 딱 2000부만 인쇄되었지요. 전 세계의 배트맨 팬이 대략 1900명 정도였거든요.


그 날도 로빈은 마켓에서 구입한 배트맨 최신화와 여러가지 굿즈들을 한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일요일 한 밤중의 막차를 타고요. 그 날은 정말로, 최고로 까만 밤이었습니다.


누군가 꾸벅 꾸벅 졸던 로빈을 차가운 무언가로 건드렸습니다. 로빈이 고개를 들어보니, 얼굴에 복면을 쓴 남자가 권총으로 그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열차강도! 로빈이 화들짝 정신을 차렸습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봤자 별 수 있나요. 로빈의 모든 굿즈와 책은 몽땅 강도에게 뺏겨 버렸습니다.


"하! 이딴 쓰레기들을 돈주고 사?" 강도가 로빈의 물건들을 창문 바깥으로 버렸습니다. 로빈은 울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계속 참았죠. 참기만 하면 될 것이다, 곧 경찰이 출동해 강도들을 잡을테고 그 때가 되면 난 안전해 질 것이다, 하고 생각하면서요.


그 강도가 자기 또래 여자아이 하나를 강간하려고 하는 것을 볼 때까지 로빈은 참았습니다.


"야, 이 년 좀 봐!" 강도가 외치자 다른 칸에서 대답이 들렸어요. 로빈은 강도가 한 명이 아닌 여러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로빈이 강도에게 덤벼들면 그를 제압하기 전에 다른 놈들이 쳐들어와 온몸에 구멍이 송송 뚫릴 것이 틀림 없었죠. 


'배트맨이라면 이럴 때에 어떻게 했을까.' 로빈은 생각해 보았습니다.


브루스 웨인은 그저 가만히 있었겠죠. 배트맨이라면 애초에 이런 상황에 처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모든 위험들을 사전에 방지하는 배트맨이니까요. 하지만 로빈은 브루스도, 배트맨도 아니었습니다.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지도 못했고, 가만히 있지도 못했거든요.


로빈은 강도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가 여자아이를 바라보는 사이 뒤를 잡아 경동맥을 압박했습니다.이슈 #58에서 배트맨이 리들러의 일곱 번째 부하를 제압할때 처럼요. 강도는 얼마 못가 기절했습니다. 다른 칸의 강도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어요.


모두들 숨을 죽인 채 로빈을 보았습니다. '와, 정말 대단해!' 하는 경외의 눈빛도 있었고, '젠장, 이제 어쩌려고 그래?' 하는 경악의 눈빛도 있었습니다. 로빈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I'm Bat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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