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픽 : 데미지 - 7

by 니르바나  /  on May 21, 2008 18:34

 

Damage : Part. 7


 

 

히트비전과 히트비전이 북극 상공에서 작렬했다.

붉은 섬광이 일렁거리는 오로라보다 더 밝게 빛나며 빙산들을 선홍색으로 물들였다.

“칼 엘! 제발 멈춰! 난 너와 싸우고 싶지 않아.”

북극 상공, 슈퍼걸 카라-조엘이 자신의 사촌에게 필사적으로 외쳤다.

맞은편 하늘에는 강철의 사나이가 상처 입은 맹수처럼 눈을 부릅 뜨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히트비전의 열기로 인해 망토가 너덜너덜해지고, 푸른 코스튬도 엉망이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어 보였다.

“카라, 나와 함께 하지 않겠다면 그냥 돌아가. 나는 이제 멈출 수가 없어. 만일 내 앞을 가로막을 생각이라면 아무리 너라도 해도 용서하지 않을 거야. 평소의 나라고 생각하지 마. 그건 오산이니까. 내가 왜 강철의 사나이라고 불리는지 그 이유를 톡톡히 알게 될 거야. 어느 누구도 내 의지를, 결심을 꺾을 수가 없어. 그게 나의 유일한 혈륙인 카라, 너라도 말이야!”

슈퍼맨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의지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슈퍼걸은 머뭇거렸다. 과연, 어떤 선택이 옳은 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로이스 레인,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

그녀는 슈퍼맨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를 잃게 된다면, 그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슈퍼맨의 심정이 어떤지 이해가 되었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유일한 혈육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자신마저 그를 외면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지구인? JSA, JLA의 동료들? 글쎄, 그들은 결국 타인이다. 동지라는 이름은 이해관계에 따라선 쉽게 깨질 수 있는 유리나 같다. 카라는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처음 슈퍼맨을 찾아나설 때와는 달리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누구를 위할 것인가.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가?

늘 헌신적인 태도를 바라는 이 행성의 나약한 주민들인가?

언제나 강철 같은 의지로 자신을 희생해왔던 하나 뿐인 사촌인가?

이미 답은 알고 있었다.

사실 처음부터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칼 엘, 나는 말이야. 나는…….”

슈퍼걸이 마음 속의 말을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붉은 혜성이 그녀와 그녀의 사촌 사이를 무서운 속도로 가르며 지나갔다.

물론 진짜 혜성이 아니다.

캡틴 마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

그를 알아본 슈퍼맨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장애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빙산에 내려선 캡틴 마블은 음울한 얼굴로 슈퍼맨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진심으로 슈퍼맨을 설득할 작정이었다.

“슈퍼맨, 잠깐만이요. 제발, 잠시만 내 이야기를 들어봐요. 난 당신과 싸우러 온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게 기회를 주세요. 나는 내 진심을 전하고 싶어요.”

슈퍼맨은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갔다.

슈퍼걸도 말없이 내려와 사촌의 옆에 다가섰다. 그녀는 자신의 사촌과 함께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고마워요, 슈퍼맨.”

캡틴 마블이 말했다.

그러나 슈퍼맨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되물었다.

“정말 나와 대화를 하고 싶다면 믿을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캡틴 마블, 아니 빌리. 솔로몬의 지혜라는 게 겨우 그 정도 수준 밖에 되지 않았었나.”

캡틴 마블은 고개를 갸웃했다가 곧 슈퍼맨의 의중을 파악하고는 주저없이 실천에 옮겼다.

“샤잠!”

마법의 번개가 허공을 가르며 캡틴 마블에게 작렬했다.

벼락의 기운이 사라지고 평범한 10대 소년이 나타났다. 빌리였다.

“이제 믿겠어요? 전 정말로 당신과 싸울 마음이 없어요.”

빌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힘없이 말했다.

슈퍼맨은 빌리에게 다가가더니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너의 의지는 잘 알겠다, 빌리. 나도 너와 싸울 생각이 없다. 다만 널 제압할 작정이야. 넌 가장 까다로운 장애물이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슈퍼맨의 손이 빌리의 입을 우악스럽게 틀어막았다. 너무 갑작스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빌리는 미처 피할 수도 없었고, 슈퍼걸 역시 마음을 굳힌 상태라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난 결심했단다, 빌리. 지금까지는 난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하려고 나 스스로를 엄격히 통제했지.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라. 난 오로지 지지 않는 방법만 쓸 거야. 하지만 걱정하지 마렴. 널 다치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냥 잠시 동안 잠들어 있으면 돼.”

슈퍼맨의 손아귀에 붙잡힌 빌리는 발버둥을 치다가 이내 정신을 잃고 축 늘어졌다. 슈퍼맨은 기절한 빌리의 입과 손목에 구속장치를 채우고는 뒤쪽의 슈퍼걸을 바라보았다.

“카라, 너의 결심을 믿어도 될까?”

슈퍼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칼 엘, 난 너의 유일한 혈육이야. 내가 지금 뭐라고 부르고 있는지 모르니? 난 널 클락이나 켄트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칼 엘이라고 부르고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답이 되었다고 생각해, 나는.”

불현듯 강한 바람이 불어와 사촌간의 대화가 잠시 중단되었다.

이번에도 붉은색.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중 하나인 플래쉬I(이하 플래쉬)였다.

슈퍼맨은 곧 경계태세를 갖췄다.

플래쉬는 재빨리 손을 들어 싸울 의사가 없음을 나타냈다. 그의 표정이 지나치게 어두웠다. 뭔가 불안했다. 불길한 예감이 강철 같은 슈퍼맨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유감이네, 슈퍼맨. 이런 말을 전해야 하는 나도 몹시 괴롭다네.”

플래쉬가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슈퍼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강철 같은 사나이가 흔들리고 있었다.

“설마?”

슈퍼걸이 뭔가를 떠올리고는 입을 틀어막았다.

플래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미안하네, 슈퍼맨. 로이스가 방금 자네 곁을 떠났다네. 정말로 유감이네.”

로이스 레인이 죽었다.

 

안 돼! 안 돼, 로이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슈퍼맨의 절규가 대기권을 흔들었다.

 

으아아아! 로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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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nature by "니르바나" profile

소설가 / 출판기획자 / 연애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 컨텐츠 기획자
Comment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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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 Profile
    from. [레벨:3] turnover   on 2008.05.21 19:25

    캡틴마블은 제압당한 상태
    슈퍼걸은 슈퍼맨쪽으로 붙고
    설마했던 로이스는 죽고
    슈퍼맨의 광폭화를 어찌감당할지..

  • No Profile
    from. [레벨:3] turnover   on 2008.05.21 19:28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필력이 대단하세요..

  • profile
    from. [레벨:1] 니르바나   on 2008.05.21 21:08


    감사합니다.
    turnover님, 재미가 있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_^

  • No Profile
    from. [레벨:0] 귀선자   on 2008.05.21 23:55

    상황이 무척이나 안 좋게 돌아가는군요.
    개인적으로 슈퍼걸을 아주 좋아하는데,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가 봅니다;
    그나저나 캡틴 마블은 안습의 극치네요;;(때려보지도 못하고 제압당하니)
    슈퍼맨, 다크사이드로 접어들려고 하니 제법 얍삽해지는 듯...퍽!<
    건필하세요^^

     

  • profile
    from. [레벨:1] 니르바나   on 2008.05.22 01:30
    개인적으로 슈퍼맨 지지자인데,
    코믹스나 영화를 보면 슈퍼맨이 너무 반듯하다 못해
    무시당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어서
    그가 만약 작정하고 덤빈다면 어떨지를 상상하면서 쓰고 있습니다. ^^
  • No Profile
    from. [레벨:0]title: 스파이더맨 엔텔레키   on 2008.05.22 23:45

    캡틴 마블은 항상 제가 본 만화에서는 슈퍼맨의 약한 마방때문에 거의 대적자 스럽게 나타나긴 하지만

    거의 항상 결국 슈퍼맨한테 이기지 못하죠... 원래부터 DC쪽이 아니라서 차별하는 걸까요.

  • No Profile
    from. [레벨:0] rprprp01   on 2008.05.23 23:02

    으아아아 루이스가 죽다니 으아아

  • profile
    from. [레벨:7] 그라운드제로   on 2008.05.30 16:51
    흡입력이 상당하군요; 읽으면서 엄청나게 몰입했습니다.
  • No Profile
    from. [레벨:7] dre6543   on 2008.06.01 23:50
    재밌게 읽었습니다.
  • No Profile
    from. [레벨:3] 명자숑   on 2008.06.14 12:58
    이제부터 큰일이 시작될꺼같네요..
  • No Profile
    from. [레벨:3] 블레인   on 2008.09.05 07:44
    잼있네요ㅎㅎㅎ^^
  • No Profile
    from. [레벨:3] 이크홀   on 2008.09.15 23:23
    와 마지막 그림.......
  • profile
    from. [레벨:3] 뷰티풀맨   on 2008.12.31 13:21
    플래쉬 센스 쟁이 ;; ㄷㄷ
  • No Profile
    from. [레벨:5] 샤이후   on 2009.06.01 00:56
    갈수록 재밌어지네요ㅎㅎㅎ
  • No Profile
    from. [레벨:8] nuhgnoj   on 2009.08.15 20:31
    그림자가 덮네요
  • No Profile
    from. [레벨:3] BreezyNight   on 2009.09.15 15:40
    흥미진진 해지는군요 ㅋㅋ
  • No Profile
    from. [레벨:2] 모세의기절   on 2010.02.22 21:48

    이제부터 인가..ㄷㄷ

  • No Profile
    from. [레벨:0]title: 노르트 철싸   on 2011.07.09 09:58

    정독중..  결국 로이스가 죽었네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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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om. [레벨:3] Mechanic새우   on 2011.12.03 12:06
    결국에는 로이스양이 죽은 건가요. 정말 대단한 필력이세요. 뒤로 갈 수록 내용에 빠져들고 있어요. 흑흑
  • No Profile
    from. [레벨:0] 탱그리리   on 2012.05.06 22:54
    감사합니다.
  • No Profile
    from. [레벨:0] 덴버가 좋아   on 2012.07.30 22:49
    선댓글 후읽기 쎈스
  • profile
    from. [레벨:15]title: 댄 디디오 끝판대장   on 2012.09.20 13:02
    점점 최악으로 치닫는군요...
  • No Profile
    from. [레벨:2] 프린지   on 2013.08.22 17:41
    흠...그럼 플래쉬는 ... 누구편에 서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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