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 군사들이여! 오늘 밤 우리는 지옥에 초대받을 것이다.”
 
『300』은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패의 분수령이 되었고, 동서양 역사에 중요한 지점이 되었던‘테르모필라이 전투’를 소재로 한 만화다.

헤로도토스가 ‘300만 명 대 4천 명의 대결’이라 부른 이 전투에서 그리스의 소수 병력은 밀려오는 페르시아 군을 테르모필라이(뜨거운 길)라 불리는 협로에서 막아내어 처절한 전투를 벌이다 모두 전사한다. 실제 병력이 얼마나 되 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적어도 수만 이상의 페르시아 군이 출병했음은 분명하다. 엄청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300명의 스파르타 군사들과 레오니다스 왕은 테르모필라이의 입구인 ‘뜨거운 문’을 사수하며 사흘을 버텨내 후방의 그리스 군대에게 시간을 벌어주었다.

패했지만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희생적 전투를 벌였던 이름 없는 병사들은 그대로 전설이 되었고, 지금도 테르모필라이 언덕에 가면 다음과 같은 비문이 남아 있다.
 
이곳을 지나는 자유인은 들어라.
언제까지나 영원히… 세월이 깃든 바위 속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그대에게 속삭일지니.
스파르타에 전하라, 지나는 이여.
스파르타의 법에 따라, 여기, 우리가 누워 있다고.
 
이 비문은 고대 그리스의 서정시인 시모니데스가 스파르타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해 쓴 것으로 『300』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대로 인용되었다.

이 전투는 서양 문명을 지키고, ‘동방’에 대조되는 ‘서구’라는 실체를 탄생시킨 신화로 남아 있다.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 영국의 시인 바이런, 그리고 소설가 윌리엄 골딩 등 많은 예술가들이 테르모필라이에서의 장렬한 전투와 한 매력적인 영웅의 죽음에 경의를 표하고 문학적 영감을 얻기도 했다.
 
 
종이 위에 살아 숨 쉬는 매력적인 영웅 캐릭터들
 
『300』은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들과 그들을 이끄는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스파르타 군은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의 군대로 구성된 연합군 중 스파르타 군은 가장 용감하고 가장 엄격하며 가장 단련된 정예부대다. 그들은 변덕스런 인간을 믿기보다 법을 신봉하는 법치주의자들이며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는 인내를 덕목으로 삼는다. 막연하게 역사 수업에서만 알고 있던 스파르타인들의 강인함이 생생하게 그려지면서 흔히 쓰이는 ‘스파르타식’이 무엇인지 확실히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 스파르타인들에게 레오니다스 왕은 절제와 규범, 예의의 표상이며 용감하고 희생적인 전사이자 지도자의 전형이다. 다른 일반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갑옷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을 붉은 망토 하나만으로 감싼 그의 캐릭터로 스파르타의 신념을 엿볼 수 있다.

그와 대척점에 있는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역시 적이지만 매우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 특히 자신을 신으로 착각하는 오만할 정도로 당당한 왕, 폭압적인 군주인 크세르크세스는 시각적으로 아주 독특한 매력을 지닌 만화 캐릭터로 재창조되었다. 레오니다스와 모든 면에서 반대인 만큼 두 사람은 시각적으로도 확연히 대조된다.
 
“크세르크세스가 키가 아주 크면서 이국적인 특징이 있고, 동양의 문화가 풍성하게 잘 드러나는 그런 사람으로 보이길 원했어요. 작업을 하면서 그는 커지고, 더 커지고, 피어싱은 점점 더 많아져서 거의 미친 사람처럼 보일 때까지 그를 마구 덮도록 내달려버렸어요. 그 아이디어는 페르시아 제국의 화려함을 잘 전달했고 절제되고 엄격한 스파르타와 확연한 대조를 이루었죠.”
- 프랭크 밀러 인터뷰 중에서 (http://www.comics2film.com)
 
 
이 밖에도 레오니다스의 충복이면서 테르모필라이의 이야기를 그리스인들에게 전해주는 딜리오스, 처음엔 약골인 듯한 병사이다가 강한 전사로 단련되는 스텔리오스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두 왕의 팽팽한 대립 구도에 섬세함을 더해준다.

그리고 대부분의 역사 기록에, 단순히 ‘배신자’로만 남아있는 에피알테스를 혐오감을 주는 외모와 그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가진 인물로 구체화했다. 그리고 조국을 배신하고 페르시아 군에 지름길을 알려준 이유를 설정해 개연성도 부여했다.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했지만 캐릭터의 외양이나 뒷이야기에 좀 더 극적인 부분을 첨가한 것이다.그래서 구체적인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역사적 사실에 설득력이 더해졌고 캐릭터들은 더욱 생생한 모습으로 태어났다.
 
 
대형 판형, 풀 컬러로 만나는 고대사의 한 장면

『300』은 국내 만화에서 보기 힘든 큰 판형에 아동 그림책에 많이 사용했던 가로 넘김을 사용해, 마치 와이드 스크린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표지에는 고대 그리스의 투구와 스파르타의 상징색이자 핏빛을 연상케 하는 붉은 글씨의 제목을 배치해 전쟁 후의 묵직한 여운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절정에 달한 놀라운 연출력을 보여준다. 컷의 구성과 연출은 흔히 우리가 보아왔던 것과는 달리 한 페이지 전체를 한 장면으로 사용하는 특이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기존만화 독자들에게 신선한 스펙터클을 제공하고 있다.
페르시아 군이 쏜 화살이 까맣게 하늘을 덮는 장면, 군사들이 언덕 위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장면, 방패를 들고 전열을 갖춘 장면, 투구를 쓴 레오니다스의 눈으로 본 전투 장면 등이 실감나게 재현되었다. 이런 전투 장면들은 왜프랭크 밀러의 만화가 그 장면 그대로 영화화될 수 있는지 알게 해준다.

또, 책 표지에도 작가인 프랭크 밀러와 함께 이름을 올린 린 발리는 노란색과 붉은색을 주로 사용하면서, 일관된 톤을 지닌 색채로 오랜 역사 속 전쟁을 시각화한다.

컬러이긴 하지만 『씬시티』처럼 흑백의 대조나 그림자, 혹은 실루엣만으로 표현하는 기법도 여전하다. 구체적인 묘사없이도 강한 인상을 남기는 이런 장면들은 압축과 생략, 시적감성이 흐르는 『300』의 전체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만든 사람들

글 그림 - 프랭크 밀러

1957년 메릴랜드에서 태어난 프랭크 밀러는 1977년 골드키 코믹스의 《더 트와이라잇 존》을 통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2년 뒤인 1979년, 그는 『데어데블』 시리즈를 발표해 마블 코믹스의 오래된 캐릭터인 맹인 슈퍼 영웅 데어데블을 다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며 크게 주목받았다. 이후 그는 DC 코믹스로 자리를 옮겨 일본 시대극과 사이버 펑크를 결합한 『로닌』을 발표하며 만화가로서 입지를 다져갔다. 특히 1986년 발표한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슈퍼 영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불러일으킨 80년대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으며, 1991년 출간된 『씬시티』는 마니아들을 열광시키며 그를 미국 만화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만들었다.

또한 그는 『로보캅』 2, 3의 각본을 쓰고 몇몇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등 일찍부터 영화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그의 작품 중 『씬시티』, 『데어데블』 등은 영화로 만들어져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300』의 영화화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채색 - 린 발리

만화의 채색을 담당하는 컬러리스트로 1984년 프랭크 밀러의 『로닌』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프랭크 밀러와 함께 작업한『로닌』과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 모두 실험적인 색채를 사용한 낯선 만화들이었지만 상업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프랭크 밀러와 『배트맨 : 다크 나이트 스트라이크 어게인』, 『엘렉트라』, 『300』 등 여러 작품을 함께 하면서 작품성과 상업성을 두루 갖춘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옮긴이 - 김지선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 편집자로 근무했으며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씬시티』, 『돼지의 발견』이 있다.

레터링 - 김수박

197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구대학교에서 건축 디자인을 전공했고, 대학 신문에 시사만화를 연재하면서 만화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사람의 곳으로부터』, 『아날로그맨』이 있다. 『로버트 크럼의 아메리카』, 『씬시티』의 한글 레터링을 담당했다.


 

300
Darkhorse Comics
Limited Series
1998
5
제작진
프랭크 밀러
프랭크 밀러
부가정보
정식출간 2007.01
김지선 옮김/세미콜론